흑산, 어둡고 무서운

Black Mountain, Dark and Scary

2021.11.23. - 2021.12.12


Artist. Soyo Lee

“흑산이라는 이름이 어둡고 무섭다(黑山之名 幽晦加怖).”


전시는 『자산어보』(玆山魚譜) 머리말에 나타난 이 한 줄의 글로부터 시작한다.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 지식인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가서 그곳의 어종(魚種)을 기록한 책이다. 정약전은 자신이 머무는 섬의 이름, ‘흑산’이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감정을 토로하며 이를 ‘자산’으로 바꾸어 적는다. 해양생명체를 생김새에 따라 분류하고, 직접 관찰하고 주변 어부들에게 물어 그 습성을 서술하는 저자의 객관적 태도는 ‘어둡고 무섭다’는 주관적인 이유로 고유명사를 교체해버리는 지점에서 의아해진다.

작가 이소요는 이 책을 제목으로 하는 전시 《玆山魚譜: 그림 없는 자연사》를 열었고 이후 같은 제목의 연작들을 선보여왔다. 생물이 사회문화적으로 해석되는 양상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 이소요가 한 전근대 지식인의 수산학 저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이 책의 구성에 대한 저자의 기록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그림은 믿을 것이 못 되니 글로만 남기라는 동생 정약용의 조언에 따라 정약전이 저서 안에서 어종의 이미지 묘사를 배제했다는 점이다. 생물의 재현에 있어서 이미지를 불신하는 태도는 오늘날 고해상도 이미지가 범람하는 오늘날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대상의 실체를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여겨지는 재현의 한 방식이 신뢰받지 못하는 이 장면은 앞서 섬의 이름조차 감정을 근거로 바꾸는 한 지식인의 태도와 연결된다. 그리고 질문을 자아낸다. ‘인간은 비인간 생명체를 어떻게 재현하며, 또 어떤 재현을 신뢰하는가?’

이번 전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재현과 이 재현에 대한 인간의 상호불신을 다룬다. 이소요는 자신의 작업 안에서 생물을 보존물과 문헌 정보 그리고 도판 이미지 세 가지로 재현해왔다. 이러한 세 가지 재현 방식은 조선시대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아서, 망자의 육신은 무덤으로, 문자 정보는 위패로, 시각 정보는 초상화로 남겨졌다. 사람들은 각기 재현방식에 중요도를 달리 부여했고, 특히 초상화가 믿을 수 있는 재현인지에 대한 논의가 빈번했다. 『자산어보』는 이러한 이미지 재현에 대한 불신의 확장으로서, 이소요의 전시명처럼 ‘그림 없는 자연사’가 된다. ‘흑산도’는 이 자연사의 무대이자, 어두움과 두려움으로 재구성되는 19세기 지식생태계의 무대이다. 전시장은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일부 어종을 앞선 세 가지 방식으로 배치한다. 죽은 어류의 몸은 알코올에 잠겨 액침표본이 되어 테이블 위에 올라가고, 어류를 대하는 저자와 해석자 그리고 지식에 동참하는 어부들의 경험담은 글이 되어 벽면에 놓이고, 어류에 대한 사진과 도상 이미지는 인쇄되어 유리면에 부착된다. 산 생명의 원본성을 추체험하려면 세 가지 재현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겠지만, 사람들은 이를 취사선택하고 재현에 대한 믿음에 위계를 부여해 왔다.

오늘날 인간은 비인간 생명체를 보다 동등한 위치로 설정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의지는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의 소산이나, 언어의 격차를 근거로 이러한 믿음은 의심받기도 한다. 이소요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바탕을 상호신뢰가 아닌 상호불신에서 구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같은 대상에 대한 재현을 서로 불신하지만, 그 몰이해를 인정하면서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를 통해 간신히 공존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전시장 안에 세 가지로 분리된 해석을 바라보고 또 그 불신에 대한 역사를 짚어나가는 일은 공존의 전제가 이해했다는 자신감이 아닌 불신 해왔다는 인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글. 이문석

사진 : 정영돈

Photo : Youngdon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