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아있는 모든 것이 숨쉬고 있다.

All Living Things are Breathing Now

2024.02.09. - 2024.03.03.


Artist. KYUN-CHOME

프로듀서. 오민수

미디어 장비. 올미디어

그래픽 디자인. 파이카

일본어 번역. 콘노 유키

영어 번역. 이경탁


주최. 미학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쿠마가이 마사토시 문화재단

영하의 '타이파'


전시 제목 ‘지금, 살아있는 모든 것이 숨 쉬고 있다’는 큔쵸메가 선보인 동명의 설치작품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10월에서 12월까지 열린 큔쵸메의 개인전의 일환으로, 쿠로베시미술관 주변 갈대밭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관람객들은 전시장 안에서 유리창 너머로 파란 바탕의 목제 패널 위로 제목과 같은 문구의 흰 글자가 적힌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큔쵸메는 이 전시의 성격을 “‘타이파’가 나쁜 전시”(タイパがとても悪い展示)라 소개한 바 있다. ‘타이파’(タイパ)란 타임 퍼포먼스(タイムパフォーマンス)의 줄임말로, ‘사용한 시간에 대해 얻은 실적 또는 효과의 비율’을 의미하는 일본의 신조어이다. 도쿄에서 서너 시간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쿠로베시미술관에서 큔쵸메는 관람객들의 ‘타이파’가 무뎌지기를 바랐다. 두 작가가 따사로운 하와이와 필리핀의 해변에서 머물며 제작한 출품작들은, 바닷속에서 작가(혼마 에리)가 기도하는 자세로 가라앉는 영상, 이때 위로 떠오르는 기포를 촬영한 사진들, 모래사장에서 햇볕에 따듯해진 돌을 배꼽 위에 올려두고 온기를 만끽했다는 내용의 드로잉, 서늘한 야외에 드로잉 이미지를 프린팅한 티셔츠들을 건조대 위에 널어놓은 설치물, 그리고 앞서 소개한 간판 모양의 설치작품 등이었다. 이외에도 전시장 앞에서 아이스크림에 대한 기억을 적어주면 실제 아이스크림으로 교환해 준다든지, 미술관에서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한 카페에서 작가가 세계 각지에서 모은 원두로 만든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든지, 작가가 추천한 쿠로베시에 인접한 바다를 구경한다든지 하는 등의 소소한 이벤트를 경험하며, 관람객들은 전시장 안팎으로 무딘 효용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앞으로는 더욱 더 “타인의 상상력을 믿고 싶다”고 말하며,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는 안내문 등을 가능한 한 줄이려 했다는 작가의 말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창작을 일종의 ‘새로운 기도법’이라고 소개하는 큔쵸메에게 있어서, 이러한 실천은 쿠로베라는 교외 지역을 ‘타이파 나쁘게’ 즐기기 바라는 소망의 발로이다. 이번 서울에서의 전시는 이 기도의 연장선에 있다. 아울러 정반대의 환경적 조건 위에 있다. “지금, 살아있는 모든 것이 숨 쉬고 있다”는 문장이 앞선 하와이와 필리핀과 쿠로베를 등지고 깊이 다이빙할 수 없이 얼어붙은 개천과 기포가 아닌 입김이 보이는 추위 앞에 등장한다. 이 전시는 쿠로베시미술관에서 선보인 큔쵸메의 예술적 실천들이 정치적 이슈를 유쾌하게 파고들던 지난 작품들과 달리 더 평화롭고 명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이 단지 온화한 환경에서 경험한 낭만을 묘사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영하의 작은 공간 안팎에서도 큔쵸메의 ‘새로운 기도’를 통해 여전히 ‘타이파 나쁜’ 시간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이문석





작가 소개


큔쵸메는 혼마 에리와 나부치로 구성된 일본의 아티스트 콜렉티브로, 2009년부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큔쵸메는 성차별, 자연재해, 국가기관의 감시와 정보 불평등 등 일본 사회 안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사회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이러한 주제 의식을 매체와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고 시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특히 〈피난 지시 구역에 타임캡슐을 묻으러 가다〉(避難指示区域にタイムカプセルを埋めに行く, 2011)나 〈매미 허물 Crush!〉(空蝉Crush!, 2017)에서 볼 수 있듯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큔쵸메의 작품 활동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는데, 이는 이 사건이 재난 이후 드러난 국가권력의 무능과 사회적 트라우마에 어떻게 저항하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하여 큔쵸메에게 화두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큔쵸메는 일본 사회 속 사회적 소수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 안에서 발견되는 오늘날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묻고 또 그것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하여 꾸준히 다루어왔다. 두 종류의 도넛을 통해 오키나와 미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오키나와현민들을 포함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엮어내는 영상작품 〈완벽한 도넛 만들기〉(完璧なドーナツをつくる, 2017-2018),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지 않아 ‘성별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트랜스젠더들과 만난 뒤, 그들에게 자신의 새 이름을 목청껏 부르게 하는 영상작품 〈목소리가 사그라질 때까지〉(声枯れるまで, 2019) 그리고 검은 먹으로 쓴 자신의 옛 이름 위로 새 이름을 붉은 먹으로 쓰는 모습을 담은 영상작품 〈나는 세-지〉(私は世治, 2019) 등이 주변부 사람들과의 교류의 결과를 담아낸 작품들이다. 이러한 큔쵸메의 예술적 실천은 특정 장르나 매체에 한정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는 사람들의 행위, 특히 먹거나 소리를 지르는 원시적인 행위나 일상적인 행위가 재료로서 그리고 소재로써 사용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통신 일체가 먹통이 된 상황을 경험한 뒤 멀리 떨어진 사람들끼리 소통하기 위해 늑대처럼 우는 법을 배워보자는 우스꽝스러운 발상으로 시작된 영상작품 〈멀고 먼 세계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遠い世界を呼んでいるようだ, 2013), 작품 이미지 등을 프린팅한 티셔츠를 빨래한 뒤, 빨래 널기 좋은 날에 세탁물을 야외에 널어 일시적인 전시 장소를 조성하는 설치작품 〈빨래미술관〉(洗濯物美術館, 2022-2023)은 행위 또는 그 행위의 결과물을 적극적으로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 예시이다. 자신들의 예술적 실천이 마치 산에서 홀로 수행하기와 마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 듣기를 반복하는 승려들의 활동을 닮았다고 말하는 큔쵸메는 이처럼 한 사회의 주변부적 존재를 기록하거나 그들과 함께 어떤 행위를 하고 그 결과를 유쾌하게 또는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큔쵸메는 개인전으로는 《영혼의 색은 파랑》(魂の色は青, 2023, 쿠로베시미술관, 토야마), 《다시 한번 태양 아래서 태어나고 싶다》(もう一度 太陽の下でうまれたい, 오카모토타로기념관, 도쿄), 단체전으로는 《롯폰기 크로싱 2022: 오가고 오가는》(六本木クロッシング2022展:往来オーライ!, 모리미술관, 도쿄) 등 다수가 있으며, 제17회 오카모토현대예술상(岡本太郎現代芸術賞)을 수상했다.


@kyunchome

kyunchome.com

인터뷰 참여 및 기증품 제공 :  노가군, 린이, 방시윤, 방지수, 쉬윤페, 이민기, 장은자, 진숙평, 진지예, 티파니, 허경함, 황군


사진 : 양승욱

Photo : Seungwook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