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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초록, 흐르는 땅
Flaring Green, Flowing Ground
2022.11.30. - 2022.12.18.
Artist. Harim Kim
*대관전시
여기, 오묘한 빛의 땅을 딛고 선 식물들이 있다. 다양한 모습의 식물들은 서로에게 겹친 듯 겹치지 않게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다져, 위로 그리고 옆으로 식물 고유의 생동감을 내뿜는다. 식물의 틈새, 몽환적인 빛의 흐름이 가득한 그림 앞에 멈춰 잠시 생각을 다듬는다. 식물들 사이로 보이는 다채로운 기운은, 그들이 뿌리내린 땅의 빛과 유려하게 어우러져 마치 거대한 테라리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아름다운 판타지의 잔향을 만들어 낸다.
강렬한 총천연의 그림에서 시선을 돌리면, 우리 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의 모습들이 놓여있다. 각자 다르게 주어진 환경에 있지만 원래부터 그곳의 일부 혹은 전부였다는 듯 자리하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만 찾을 수 있는 도보 틈의 식물도 있고, 흙이라곤 한 줌도 없는 곳에서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식물, 누군가 정성스레 마련해둔 화분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식물도 있다.
고개를 들어 이곳의 바깥, 다양한 식물들을 보기 직전의 문턱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도로 한켠 혹은 아주 조그마한 흙더미의 틈에 자라는 식물들을 바라본다. 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과 바람, 물의 아주 얕은 기운이라도 놓치지 않은 채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해있는 식물들을 상상한다. 이들의 순간은 전시장 안의 식물들, 《타오르는 초록, 흐르는 땅》의 순간들로 다시금 이어진다.
김하림의 개인전 《타오르는 초록, 흐르는 땅》은 ‘식물’, 그리고 그의 ‘터전’에 대한 고찰을 다양한 화법의 그림을 통해 담는다. 이곳에 포착된 식물의 모습은 대체로 인간이 설정한 인위적인 환경에 맞춰 각기 다른 터에서 살아가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주어진 환경이 어디든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뿌리 내리고 각개의 생존을 도모하는 삶. 김하림은 첫 번째 개인전 《조금씩, 가만히》을 통해 이상한 땅에 뿌리 내리고, 어디서든 불쑥 자라나고 변형되는 식물의 모습을 토대로 ‘환경’과 ‘조건’에 대한 작가의 경험과 고찰을 오브제로 작업했다. 《타오르는 초록, 흐르는 땅》에는 김하림의 이런 전작과 궤를 함께하며, 식물과 식물이 자리한 땅을 관찰하는 작가 고유의 시선이 담겨있다.
다시 전시장을, 그리고 찬 기운이 대지와 공기에 가득한 전시장 바깥을 번갈아 바라본다.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록 잎을 내놓는 잡초들, 흙 한 줌 없어 보이는 황량한 아스팔트 도보 사이로 머리를 삐죽 내밀고 있는 식물들을 본다. “어떻게 이런 곳에 살 수 있지?”라며 혼잣말을 보태는 건 인간뿐일 것이다.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언제든 흐르거나 고일 준비가 되어 있는 ‘땅’에서, 주저함과 망설임을 모른 채 사소한 생명의 기운이라도 놓치지 않고 한껏 끌어안는 식물들은, 인간의 오감으로 감별해낼 수 없는 ‘흐르는 땅’의 ‘타오르는 초록’이다. 소리 없이 자라며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도시 식물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첫 번째 장면, 우리가 시선을 빼앗겼던 몽환적인 빛과 색의 식물로 시선을 고정한다.
글. 강민영(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