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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발화
自己發火
2023.10.27. - 2023.11.19.
Artist. Yeeju Kim
*대관전시
분출하듯 폭발하고 사라지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언어로 다 재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특정 한 감정들이 그렇고, 그게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몇 가지 개념들이 그렇다. 예술은 항상 언어화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주목하고 관찰하고, 이것을 드러내려 한다. 하지만 이 목적은 언제나 실패할 뿐, 상징계에 매몰된 인간이 언어로 정착하지 못한 개념들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언제나 그렇듯이 미끄러진다. 왜일까. 두 가지 질문이 가능해진다. 첫째는 왜 그런 것에 주목하려 하는 가라는 질문일 것이고, 두 번째는 그것은 왜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위에서 언급되었다. 우리는 언어라는 상징체계로 구조화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떠한가. 대체 왜?
거듭되는 질문과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해 떠도는 공허한 침묵이 흐르고, 제법 그럴싸하지만 막연하기 그지없는 몇 마디를 내뱉는다. 이유인 즉, 아마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각자의 방법으로 알아내려 하는 시도만이 있을 뿐, 모두가 정답은 아니지만 나름의 답변이 되는 상황만 남겨진다. 김이주의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이 물음에 대한 그 나름의 답변이다. 그렇지만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어느 특정한 시간, ‘밤의 시간’이라는 모든 형체가 불분명해지는 새벽의 그을린 불빛에 의지한 시간대이다.
이 밤의 시간은 완전히 깜깜한 어둠이 자리 잡은 칠흑 같은 밤도, 활기찬 도시의 조명이 서로가 서로를 밝히는 환락의 밤도 아니다. 작가는 어둑한 골목에 가로등이 달빛을 대신하고 도시의 형체들이 불분명해지는 밤에 주목하고 이를 유독 붉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대낮의 분명함과 또렷함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고개를 드는 멜랑콜리한 감정들을 그가 관찰한 풍경들 안에 녹여낸다. 감정이 증폭되는 특정한 시간대의 풍경들은 서로 뒤엉키고 뒤섞이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붉은색이 음침하면서도 스산한 기운을 내뿜으며 화면을 가득 채우는가운데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들은 눈앞에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일상의 어느 순간을 심홍색으로 물들이기도 한다. 이 시간에는 시선의 주체로써 작가 자신만이 존재한다. 그 외에 대상들은 모두 풍경의 일부가 되어 고독함은 더욱 부가된다.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주목한 작가가 발견한 것은 스산하게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 모르는 건물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 인공조명의 가로등이 비추는 어두운 골목,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들의 눈빛, 도로 사이의 풀숲과 대로변에 있는 나무들의 속삭임 같은 움직임이다.
아무도 없는 풍경의 불길한 기운으로 뒤덮인 곳에서부터 출발한 작가의 시선이 도달한 곳은 홀로 남겨진 밤, 외로움이 가득한 공허한 밤이다. 사람의 부재에서 오는 관계 맺기에 대한 갈망을 뜨겁게 분출하고 가득 담아낸 화폭에는 쓸쓸하지만 왠지 모를 기다림의 온기가 남아있다. ‘자기발화(自己發火)’라는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자신의 열로 스스로를 불태워버릴 만큼의 갈망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외로움이 대신한다. 뜨겁게 분출하듯 폭발하고 사라지는 것은 다음 날 해가 뜨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는 지난날 밤의 증폭된 감정일 뿐이다. 그렇지만 매일 밤 어김없이 또 찾아오는 감정의 기복을 인공조명처럼 끄고 켜기를 반복할 때, 자기발화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감정이 발화된 자리에 남은 재는 외로움이다.
글. 이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