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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즘나무의 고사(枯死)
The wither of platanuse orientalis
2023.12.08. - 2023.12.31.
Artist. Guny Lim
2023 미학관 작가공모 선정 전시
버즘나무의 수령(樹齡)
국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이 나무는 버즘나무라는 이름보다 플라타너스라는 학명이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버즘나무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이 나무는 나무껍질이 갈라지면서 떨어지는 모습이 버짐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생육 환경이 까다롭지 않은데다가 대기오염에도 끄떡없고 공기 정화에 탁월하다고 하여 한 때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기 때문에, 생소한 이름에 비해 우리 주변에는 꽤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 잎이 넓은 나무를 매일 같이 스쳐지나가지만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할까?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은 관심을 갖는 것에 이유를 붙일 뿐, 무관심한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버즘나무는 어떤 쓰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로수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도시 곳곳에 심어졌다. 그리고 해가 지날수록 그 뛰어난 생육으로 인한 무성한 잎사귀 때문에 전신에 뒤엉키고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에 시달린다. 장마철에는 떨궈진 잎이 하수구를 막는 불편도 야기한다. 이에 매번 시달리는 것은 사람일까, 나무일까.
거니림이 주목하는 것은 주변에 널려 있으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쉽게 지나치는 것들, 사회 안에 일반적으로 팽배한 무관심이다. 이 무관심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생물일 수도, 사건일 수도 있다. 모든 대상에 대한 무관심이 초래하는 개인주의적 삶의 태도에서 ‘개인’은 당연히 사람이다. 다른 어떤 개체도 개인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을 중심으로 주변에 퍼져있는 무관심이라고 적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를 바꿔 말하면, 거니림은 인간 사회 안에서 관습화된 무관심에 가려진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잡초, 비둘기, 돌멩이, 가로수,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구성하고 있지만 도외시되는 것들이다. 아무도 그것들의 이름을 모른다.
거니림은 무관심에서 비롯된 소외와 외면이 결국 혐오로 연결되는 지점에 집중한다. 무관심에는 이유가 없지만 혐오에는 이유가 있기-혹은 반드시 있어야 하기-때문에, 그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라져야 하는’ 이유가 된다. <감정만 남은 혐오>(2022)나 <본질을 잃고 점점 강해지는 미움>(2022) 등 제목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모두 혐오로 귀결되는 감정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유의 논리적 타당성이 사라진 혐오는 대상 자체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이유가 된다. 매일 아침 출근길, 도시와 도시 간의 이동 속에서도 이 나무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로수가 되었고, 민원에 시달리며 결국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무자비한 가지치기, 토막 난 나무 밑동, 버즘나무는 그렇게 조금씩 죽어간다. 버즘나무는 특성상 죽어가는 것이 눈에 띠지 않는다. 속부터 곪아서 결국 죽어가는 버즘나무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다. 버즘나무는 왜 거기에 있게 되었을까? 인간에 의해 그 쓰임과 죽음이 정해진 것들. 버즘나무의 수령은 인간에 의해 좌우된다.
거니림이 도시에서 외면 받는 것들에 주목하는 것은 이것들에 대한 감정이입일까, 이를 통해 다른 것을 보기 위한 수단일까. 어느 하나로 단정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나무의 의지를 상상하는 것, 어쩌면 작가가 외면된 것들에 관심을 두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닐지 추측해본다. 그리하여 나무의 삶을 상상하는 것.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쓰임을 강요당하고 그것에 부응하지 못하면 버려지는 것들의 삶을 되새기는 것. 미움의 감정을 내려놓고 <껍질>(2023) 사이의 생과 사를 들여다보자. 버즘나무의 수령은 그로부터 좌우된다.
글. 이슬비
사진 : 양이언 / 작가 제공
Photo : YangIan / Courtesy of the ar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