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이 어긋나더라도

Even when our shouts fall out of sync

2024.04.05. - 2024.04.28.


Artist. Tzu-Tung Lee

프로젝트 협력: 린옌장
기여자: 구두리, 린촨카이, 니나 예자
필자: 이문석, 릉리치, 린촨카이
프로듀서: 오민수
미디어 장비: 올미디어
그래픽 디자인: 파이카
중국어 통역: 허경함
영어 번역: 이경탁, 오즈번역회사

주최. 미학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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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연계 프로그램

스크리닝&아티스트 토크 

일시: 2024. 4. 7. 13:00  

장소: 플레이스막3 

작가 노트: 외침이 어긋나더라도 (力求失真的嗓音)


이번 전시는 미학관에서 선보이는 프로젝트 《#고스트키퍼즈》와 스크리닝 및 이 페이지 말미의 QR코드에서 공개되는 영상 〈시차 쓰기〉(2016년부터 격년으로 재편집되고 있으며, 선보이는 영상은 초기 버전임)로 구성된다.

나는 2014년 타이완의 ‘해바라기 혁명’(Sunflower Revolution) 이후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를 찍어왔으며, 현지 리서치를 통해 타이완의 퀴어 원주민들과 여성 원주민들을 인터뷰해왔다. 나는 원주민 출신이 아니므로 인터뷰 과정에서 말문이 막히곤 했다. 사실 나는 늘 말하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작가 노트를 작성하고 있는 이 순간, 나는 타이완에서 일어난 #미투운동을 막 경험한 참이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화를 입밖으로 꺼내기를 힘들어했고, 사건에 대해 말하는 증인들과 이해관계자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영상 프로젝트 〈시차 쓰기〉 이전에, 나는 〈파도〉(2011)라는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촬영 당시 영화산업 내 성차별과 폭력을 심하게 경험하면서 당시 나는 영화계 안에서 살아남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이 영화로 몇 차례 수상을 한 뒤, 나는 영화제작을 포기했다. 그래서 〈시차 쓰기〉를 촬영할 당시에는 주변 지인들에게 ‘여성으로만 구성된 영화 제작진을 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해바라기 혁명’ 이후의 원주민 운동을 기록하고자 〈시차 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나는 결국 시위에서의 성차별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에 무의식적으로 눈길이 갔다. 이 기간에 진행된 프로젝트들은 참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참여형 프로젝트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 이미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매체를 빼앗기지 않도록 설계된 과정이 되어주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막상 카메라를 셋팅하자, 그들을 배신하고 있는 것은 외려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의 참여과정이 어떻게 설계되었건 간에, 내가 원주민 사회를 비난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관객들에게 원주민들의 고통을 드러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 ‘당사자성 없는’(unauthentic voice) 목소리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원주민 운동에서 늘 외부자였다. 운동을 하며 견뎌낸 고통의 크기와 관계 없이, 나는 늘 내가 말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때로는 가장 고통받는 이만이 말할 자격이 있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한족 출신인 내가 한족들이 원주민들을 식민화해온 타이완의 역사에 대해서 발언할 자격은 없으며, 오히려 내가 겪는 고통은 일종의 침묵 속의 사죄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은 포기하는 것이었다. 고통의 순서에 따라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는 자신들이 본 것을 말할 것이므로, 나는 용기를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 내 정체성에 스스로 심어 놓은 원죄를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침묵할 때, 나는 비로소 나의 ‘당사자성 없는’ 진실에 대해 말할 자격을 얻는 것이다.


《#고스트키퍼즈》는 아마 이런 이유에서 존재하는 게 아닐까. ‘고스트키퍼즈’라 이름 붙인 필자들이 고통을 이어받은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동시에 자신들이 재해석한 존재(고스트)를 대범하게 선언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들은 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로 한 것일까? 왜 고스트들의 이야기에 이와 같은 방식(오늘날 부활했음을 가정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일까? 나는 과거 〈시차 쓰기〉의 2016년 버전이 첫 버전이며 이를 2년마다 재편집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결과, 2016년에는 20분, 2019년에는 50분, 2021년에는 70분 버전이 탄생했다. 현재의 시점으로 타이완의 지난 격정과 정치적 서사들을 돌아보도록 하기에, 이 영상의 형식이 격년제 리뷰의 형태를 띄는 것이라고 많은 이들에게 말했다. 다만 이 영상이 성적괴롭힘을 겪고 영화제작에 대한 꿈을 접고 난 이후 제작된 영상이라는 점에서, 〈시차 쓰기〉를 2년마다 재편집하겠다는 내 결정에는 많은 고민을 했다. 재편집이라는 행위는 내 미래가 돌아가고 또 돌아가서 성폭력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내 희망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영상을 제작하는 동안, 타이완 원주민 운동에 참여했던 연장자 중 한 명인 가오밍지(高明智)가 시위 마지막 날 분신자살을 결심했다. 그이는 타이완 전역에 걸친 원주민 공동체 수십여 곳을 직접 방문했으며, 원주민들이 억압받은 이야기를 듣다가 대리외상증후군(간접적 경험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는 것)으로 고통받았다. 그날 밤, 가오밍지가 자신의 분노와 슬픔, 억압과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타이완 총통부 앞에서 분신하는 것이었다. 나와 인터뷰한 후 7일 뒤에 사망한 원주민 샤먼 카팅 홍가이(Kating Hongay) 할머니의 경우, 할머니의 영혼과 의지 한 조각이 내 카메라 메모리 카드에 저장되어 있다. 페이스북과 같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SNS 계정이 우리가 세상을 떠난 뒤 우리의 디지털 묘소가 되는 것처럼, 카팅 홍가이 할머니는 디지털 매체 속에 계속 살아 숨쉬고 계신다. 〈시차 쓰기〉와 《#고스트키퍼즈》는 닿을 수 없음(inability to approach)을 모든 사람들에게 닿게 하고자(approach to everyone) 애쓰는 작업들이다. 우리는 공감하고 또 대리로 고통을 느끼더라도, 고통 뒤에 숨어 우리 자신을 잊곤 한다. 나 자신을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작업과 작가 노트를 통해 나 자신과 관객들에게 이를 상기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 소개


리쯔텅은 타이완의 개념미술가이자, 기획자, 활동가이며, 자기 자신과 자국을 드러내는 정체성의 문제에 관심을 둔다. 리쯔텅은 현지리서치 등 인류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탐구한 뒤 이를 문화적 운동의 한 형태로 이어나가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활동 초기부터 2012년까지 작가는 주로 영상과 설치작품을 선보였지만, 2013년부터는 정치성, 정체성, 예술 세 개 항에 맞닿는 질문에 대하여 연구하고 참여하며 프로젝트들을 기획했다. 특히 2014년에 타이완의 대학생들과 사회운동 세력에 의해 일어난 ‘해바라기 운동’(太陽花運動)은 현재 진행중인 식민성과 주변부 정체성을 재현하는 문제를 환기시킴으로서 그이의 예술적 실천에 큰 분기점이 되었다. 홍콩의 ‘우산 운동’(雨傘運動) 현장을 촬영한 뒤 이를 타이베이 시장선거 당일 투표소에 상영하여 전체주의에 위협받는 타이완과 홍콩의 상황을 다룬 영상설치 작품 〈민주주의 점령하기〉(佔領民主, 2014), 국립고궁박물원 주위를 맴도는 오토바이를 촬영하여 타이완 사람들의 일상과 유리된 박물관의 중화주의적 컬렉션을 비판하는 〈고궁박물원 점령하기〉(佔領故宮, 2014), 2016, 2019, 2021년 각각 작가가 현지조사를 하며 촬영한 인터뷰를 계속 재편집하며 변화하는 타이완의 정치적 서사를 담아낸 영상 〈시차 쓰기〉(時差書寫, 2016, 2019, 2021) 등이 바로 그러하다. 2019년 이후에는 주변부 정체성을 재현하기 위해, 오픈소스와 같은 탈중심화된 기술을 사용하거나 경제적 교환을 참여의 한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HIV의 생체공학적 특징를 가진 암호화폐를 전시장 안에서 거래하여 HIV 양성(positive) 반응을 실제로 긍정적(positive) 반응으로 유도하기 위한 프로젝트 〈포지티브 코인〉(帕斯堤貨幣, 2019-),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해상 무역로이자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의 소유권의 의미를 전복시키고 퀴어링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1밀리리터의 바닷물을 사이에 두고 계약, 거래 등을 진행하는 프로젝트 〈포코노미()〉(岔經濟(), 2020-)가 있다.

이와 같이 리쯔텅은 “소수자성을 지닌 공동체가 어떻게 현재의 소유권과 주권체제를 ‘퀴어’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하면서, 개인과 집단, 지역과 국가의 소수자 정체성이 어떻게 탈중심과 탈식민을 가능하게 할 것이냐는 문제에 천착해왔다. 특히 작가는 타이완과 미국을 오가며 동성혼 법제화, 교육과정 밀실제정 반대운동, 다양한 의제에 대한 NGO 활동을 전개하면서 현실 정치에 예술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하여 고민하였기에, 리쯔텅의 작업은 작가가 지향하는 정치의 실천이자 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진 : 양승욱

Photo : Seungwook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