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호 오프닝 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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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9. - 2024.08.25.


Artist. Yaloo

서문 이슬비
비주얼 아이덴티티: 핸디킴
사운드: 예츠비
설치: 아몬드테크놀로지

장비: 올미디어

3D 스캐닝: 레플리카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신인호 新人號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간 종(種) 중 오로지 ‘할머니’라는 종족만이 유일하게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남성은 ‘씨내리’로 할머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여성 생명체를 잉태 하게 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큰 쓸모가 없다. 삶을 스스로 직조하고 그것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들은 언제나 인자하고 사려 깊으며, 군중을 이끄는 지도자층으로 품위와 권위를 겸비한다. 할머니는 신의 은총과 기적을 행하는 자로 사람들 앞에 우뚝 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계층이다. 오직 그들만이 인간다움이 말소된 이 세계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직 그들만이 인간성을 빌미로 다른 생명체들의 우위를 점유한다. 다른 모든 종족들은 할머니의 선택을 받기 위해 그들에게 봉사하거나 그들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고, 어서 늙어 할머니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시중을 떠받는 시간으로 젊음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들 중에서도 단 한 사람, 신인류를 향해 나아가는 이가 있다.

 보라, 이 사람을 보라. 이제 막 또 다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그의 선박이 앞을 향해 있다. 그는 신인호(號)의 수장, 선장 신인호이다.

 

신인호 申仁浩

1938년,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그해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연이어 같은 해 독일에서 ‘수정의 밤(Kristallnacht)’ 1) 사건이 일어난다. 신인호가 8세가 되던 해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얼마가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한다. 부모가 점지해준 얼굴도 모르는 사내에게 시집가 그래도 정붙이고 산지 50여 년, 쉼 없이 살아온 날들이 쌓이고 세월이 흘러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다시 혼자가 된지도 수년째. 자식들은 장성하여 일 년에 두어 번 얼굴을 내비칠까 말까.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모두 스스로 챙긴다. 삶에서 다시 혼자로 돌아가 스스로를 보살핀다. 이 세상의 무대에서 밀려난 이들을 우리는 노인이라 부른다. 여전히 세상의 일원임을 외쳐보지만 그대로 내 목소리가 되돌아오는 메아리만 머릿속에서 울린다. 아무도 할머니를 바라보지 않는다.

 보라, 이 사람을 보라. 할머니는 이 도시를 배회하는 유령 같은 존재이다.

 


 


신인호 申仁浩

방 한 켠에 간소하게 만들어놓은 재단에 매일 아침 물을 떠놓고, 이제는 누구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조상님에게 기도를 올린다.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도, 어떤 기도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천신과 지신에게 만물이 평온하기를, 내 남은 일생이 평화롭기를 기도한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폐 끼치는 일 없이, 그저 지금처럼 큰 사고 없이 조용히 이 삶이 마무리되기를 기도한다. 젊은 날의 영광은 오간데 없고 매일 아침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집을 나서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거울을 보니, 이제는 그저 할 일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노인이 서 있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활시위를 벗어난 듯 저 멀리 달아나기만 하였는데, 노인이 되니 끼니를 알리는 배꼽시계 외에 나를 재촉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언제 이렇게 늙었나. 세월이 무심하다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멀어지는 기억을 오늘에 붙잡으며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

 보라, 이 사람을 보라. 구부정한 등과 어정쩡한 걸음걸이, 쪼글쪼글한 손 마디마디와 생기를 잃은 피부, 어제와 10년 전을 구분하지 못하는 퇴색한 정신과 이 낡은 육신, 이 유한한 인간의 늙어감을 보라.

 

신인호 信認好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 이제 막 시작을 알리는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결의는 고결하고 단정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는 그의 뒷모습이 유독 오늘따라 평소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수많은 해역을 넘나들고 세계를 누비며 그가 쟁취한 승리와 명예, 그에 따른 전리품이 배를 가득 채운다. 약탈을 일삼으며 바다를 건너는 그는 그에게 맞서는 것, 그의 규율을 어기는 것은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상관없이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그리하여 신인호의 주변은 바다가 늘 핏빛이라. 이 배 위에는 출신도, 민족도, 국가도 없다. 오직 승선한 자들의 의지와 삶에 대한 욕구만 있을 뿐,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초국적이고 초민족적 공동체 안에서 선장 신인호는 그들을 다스리고 거느리는 만큼 어떤 막중한 책임을 갖는다. 그는 두려울 것이 없고, 삶에 비굴함이 없다. 배신자에겐 일말의 동정도 없지만 자신의 뜻을 지키는 자에게는 무한에 가까운 신의로 응답하여 사람들은 그를 두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자’로서 신인호(信認好)라 불렀다.

 보라, 이 사람을 보라, 흡사 청나라 시대 바다의 여제로 불렸던 마담 칭(Madame Ching) 2) 의 환생이리라.

 

이곳 미학관에 잠시 정박한 신인호와 신인호 선장. 그는 그간의 삶을 뒤돌아보았지만 이내 생각을 멈췄다. 생각을 하고 있기에는, 아직도 가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그를 기다리는 모험이, 또 이 배에 승선한 다른 이들의 욕망이 여전히 그를 재촉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없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3), 4), 5), 6)


글. 이슬비


1) 1938년 11월 9일 밤, 나치 돌격대 SA가 유대인들의 상점과 사원을 약탈하고 공격한 사건을 말한다. 나치의 공격으로 거리의 유리창이 모두 깨져버린 것에 빗대어 ‘수정의 밤’이라 불린다.  


2) 마담 칭(Madame Ching, 1775-1844,), 중국 소수민족 출신의 마담 칭은 대항해시대 동아시아의 바다를 재패했던 여성 해적왕으로 불린다. 한국 이름으로는 ‘정일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중 3편에 해당하는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Pirates of the Caribbean: At World's End, 2027)에 현상금 목록에 짧게 등장한 ‘미스트리스 칭’이 아마도 마담 칭을 모티프로 한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3)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는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의 수난을 기록한 4개의 복음서 중 요한복음의 어느 한 구절에서, 로마의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us)가 대중들 앞에서 자주색 옷을 걸치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있는 예수를 향해 소리쳤던 대사이다. 


4) ‘보시오, 이 사람이오.’라고 예수를 가리키는 빌라도의 외침에 십자가형을 앞둔 예수의 모습은 티치아노(Tiziano Vecellio)를 비롯하여 많은 중세 후기 거장들에게 사랑 받던 종교적 도상이었다.


5) 니체의 마지막 저작인 『이 사람을 보라』는 1888년에 집필되어 1908년에 출간되었다. 이는 니체 자신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난해하기로 소문난 니체의 저작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텍스트로 꼽힌다. 서문을 포함하여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등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 백승영 옮김, 책세상, 2016. 321-375.pp 참고) 책의 제목인 ‘이 사람을 보라’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빌라도의 대사를 차용했다. 빌라도는 ‘이 사람’으로 예수를 지칭하고 있지만, 니체는 그런 예수와 대응하여 자기 자신을 지칭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부터, 끝 모를 자신감과 자화자찬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는 겸손을 미덕으로 사회에 순응하여 살 것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감과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망상에 가까운 지나친 자신감을 니체의 말년에 다가오는 광기의 전조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니체 철학에서 이는 생에 대한 긍정과 자부심, 삶의 자긍심으로 읽힌다.  


6) 영국의 SF 소설가인 마이클 무어콕(Michael Moorcock)은 니체의 저작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동명의 SF 소설인 〈이 사람을 보라〉(Behold the Man, 1969)를 출간한다. 변변찮은 삶으로 시원하게 인생을 말아먹고 있던 주인공이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자 타임머신을 타고 서기 28년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는 성경에 나오는 그런 모습이 아닌, 현실 속 주인공 못지않게 변변찮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소설은 그렇게 어쩌다 성경 속 예수의 역할을 대체하게 된 주인공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모든 것을 후회하며 끝난다. (마이클 무어콕, 『이 사람을 보라』, 최용준 옮김, 시공사, 2013.)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의심과 신랄한 비판으로 이루어진 반기독교적 성향의 이 소설은 1967년 SF 문학상 중 하나인 네뷸러상을 수상하였다.

 


사진 : 김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