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관 美學館 MIHAKGWAN Philosopher's Stone

ㅎㄷㄷ 1.0.0

HDD 1.0.0

2025.1.12.-1.26.


참여작가|곽소진 Sojin Kwak

글|이슬비 Seulbi Lee

미디어설치|조에 JoE

사운드|라니 잠박 Rani Jambak

사진|스튜디오 만만세 Studio MANMANSE 

흔들리는 땅과 영토, 그리고 대지와 바닥


초성으로만 이루어진 이 글자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떨림을 떠올린다. ‘덜덜덜’ 몸이 떨리는 상태를 묘사하는 의태어에서 비롯되었지만 모든 것을 줄여서 말하는 이 시대의 특성상 더욱 간결하게, 더 편리하게, 더 빠르고 쉽게 그 상태를 묘사하는 데에는 ‘ᄒᄃᄃ’이라는 초성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무엇에 의한’ 떨림인지는 알 수 없다. 떨고 있는 상태인 것은 충분히 전달되지만 이것만으로는 떨림의 이유나 그것의 성격을 추측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떨리는 상태들을 모두 압축하여 “ᄒᄃᄃ”이라고 쓰고, 다양한 형태로 읽는다. 마저 채워지지 않은 모음의 자리에 제멋대로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서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읽어보지만, 초성의 조합은 단어가 될 수 없기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의미도, 발음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이 두려움에 의한 떨림인지, 깜짝 놀라서 떨리는 것인지, 혹은 설렘의 증거인지, 아니면 성적 욕망의 카타르시스인지, 어떤 떨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단지 그것이 ‘떨림’ 자체를 지시한다는 것 외에는.


곽소진의 영상이 그렇다. 스크린 속에는 등장인물도, 장면의 전환도, 서사의 전개는 물론 클라이맥스나 플롯(plot)도 없다. 극영화의 기준을 충족해야할 이유는 당연히 없지만 어떤 이야기의 흐름을 기대하며 화면을 주시하는 관객의 기대를 가볍게 비웃듯, 타격감 있는 사운드에 맞춰 몇몇 장면이 반복되면서 그저 쉴 새 없이 흔들리기만 하는 화면은 어딘지 모를 불길함마저 야기한다. 작가는 망가진 카메라를 들고 떨림의 적절한 장소를 찾아 해매다 발견한 곳에서 땅의 울림에 주목한다. 그곳에서 그는 원초적인 떨림, 울림에 가까운 흔들림 자체를 발견하고 그것을 그대로 끄집어내는데 여념이 없다. 인도네시아의 한 채석장, 섬과 화산을 오가며 촬영한 영상과 한국의 일제 강점기 시절의 사진 기록을 재촬영한 이미지가 3채널 스크린에 담겨 탑처럼 쌓아올려지고, 전기에 태운 나뭇가지와 돌덩이가 그에 기대어 있다. 죽은 나무와 영원히 사는 돌만이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스크린 속 두 나라의 풍경은 서로 뒤섞여 지리멸렬하게 흔들린다. 국제 법에 의해 국가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로서의 영토, 흙이 숨 쉬는 자연으로서의 땅, 여전히 화산 활동을 하고 있는 화산의 지면, 부동산으로서의 소유지, 대지의 물리적 변형과 상징적 변화는 인간 사회의 발전과 함께 계속 바뀌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경제 성장의 이면에 감춰진 식민지 지배, 무분별한 개발, 군부독재가 땅이 가진 본연의 기능을 시도 때도 없이 굴착한다. 파내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한다. 


2017년 이후로는 웬만한 스마트폰에도 흔들림 보정 기능이 탑재되었다. 이는 우리의 신체 감각보다 더 안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고, 인간의 시각보다 카메라 렌즈가 지닌 기술적 우월성이 진실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이게끔 만들었다. 카메라 렌즈가 안정적으로 촬영하지 못하는 지역, 장소, 공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와중에 곽소진은 오히려 역으로 손 떨림 방지센서가 망가진 카메라로 지리적, 민족적, 정치적 대지의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모든 풍경을 불확실하게 포착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자연의 떨림은 어느 때고 좋은 징조였던 적이 없다. 노이로제에 걸린 땅이 두통에 시달리듯, 작가는 미진과 진동으로 가득한 화면에서 본래의 기능에 대해서 묻는다. 그는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과 기능하지 못하는 것, 멈춰 있는 것과 멈출 수 없는 것 사이의 긴장 상태와 어긋남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진동은 작동과 멈춤 사이, 다시 말해 기능하는 것과 기능하지 않는 것 사이를 오간다. 흔들림과 떨림이 그 사이를 쉼 없이 빠르게 오가며 불확실한 잔상으로 남는다. 어쩌면 이 불확실한 이미지의 포착이, 그 이미지들의 중첩이, 확실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모음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초성들의 집합체일지 모른다. 

글. 이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