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작 입문반
poetry writing class for beginners
2025.7.4.-8.3.
참여작가|이준용 Joonyong Lee
글|이준용 Joonyong Lee
포스터디자인| 스튜디오만만세 Studio MANMANSE
새로 쓴 서문
인스타그램 계정에 포스터를 올리고, 전시를 홍보함과 동시에 속으로는 사람들이 전시에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벽 뒤에 숨어 전시장 지킴이를 할 때면, 여기 온 사람들이 대충 보고 빨리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먼 길 발걸음해 준 분들, 자리에 머물러 꼼꼼히 관람해 준 분들께 고마움과 창피함을 느낍니다.
벽에 걸어 둔 각각의 그림 밑에는 못해도 한두 개의 그림이 더 깔려 있습니다. 그림이 두껍고 탁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제가 올 초에 시를 접하고 처음 써보았듯이, 유화라는 것도 사실상 처음 해본 거라 헤매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캔버스는 종이처럼 쉽게 뜯어 버리거나 수정할 수 없기에, 덧칠하여 새 그림으로 만들거나 기존 그림의 일부를 살려 다른 그림으로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전시장에 방문해 주신 분들은 최소 54개의 그림 앞에 서 계시는 셈입니다. 아마 저에게 준비할 시간이 더 있었다면 54개의 그림은 81개로, 108개로 늘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여기 걸린 그림들이 저에게는 깨진 유정란 같습니다. 더 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노른자 속 벌건 심장이 내 눈앞에 콩닥콩닥 피를 뿜는 기분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시기와 온도가 잘 맞았더라면, 어쩌면 이 중 몇 개는 스스로 뜨겁게 살아 움직이고, 부리로 누군가의 가슴을 쪼아대며 날갯짓했을지도요.
전시 중에 서문을 새로 쓰고, 새 그림을 갖다 두고, 출품한 그림을 수차례 수정하는 히스테릭한 짓거리도 어떻게든 깨진 껍질을 만회해 보려는 수작의 일환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게 되겠습니까. 물풀로 깨진 유리컵 붙이는 짓이지요. 하던 대로 종이 드로잉 전시를 만들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그림들로 공간을 채울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걸 기대하고 미학관에서도 저에게 전시하자고 한 것일 텐데요. 미학관 선생님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저는 그림 속에서 인간을(저를) 지우려 노력해 왔고, 이번에야말로 일정 부분 목표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림 밖에서 여전히 진정성, 낯뜨거워 소위JJS이라 부르는 것을 어필합니다. 이것은 작업 확장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이 멍청한 짓거리를 되풀이합니다.
따라서 면목 없습니다만, 합평하듯 화면 속 실패의 흔적을 찾는 것,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려 하였는지와 그 회생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이 감상의 포인트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정면보단 캔버스 측면에, 두께와 부피에, 물감의 크랙 속에 존재할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죠? 못 그린 그림을 대놓고 이해해 달라는 게요. 3호에서 30호 사이 그리 크지 않은 그림들 너머로, 이 작은 전시 자체를 하나의 습작, 구글 독스에 언제든 쓰고 지울 수 있는 〈시 창작 입문반〉으로 읽어주십시오. 현재로서는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게 최선입니다. 최초의 기획은 화면에 재현하려 하는 대상의 사물성을 포착하려는 시도, 그리고 그것을 수사학적 방식으로 분류/접근하며 글과 그림을 병렬식으로 제시하는… 그런 것1) 이었습니다.
최근 미래의 손2) 이라는 책을 읽고 한동안 먹먹했는데요. 그 시인의 시처럼 누군가는 멍들고, 누군가는 마음을 찢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손으로 퍼 올리며 안도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예술이 이렇게 아플 수 있는 거구나. 시인은 그걸 알고 돌맹이를 강물에 던졌구나. 그래서 강가에 이상한 돌들이 가득하구나. 그림도 그럴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미래를, 다음 날 아침을 기다려주세요. 누구나 밤엔 명작을 꿈꾸잖아요.3)
제가 질척거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맞게 보시는 겁니다. 간절해질수록 어째 미술과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저는 사람과 이별할 때도 이랬어요. 부디 이번엔 저의 촉이 틀리기를요. 어쩌면 모든 작가는 이별의 수비수4) 일지도요.
이 글이 전시의 다섯 번째 서문입니다. 맨 처음 쓴 글은 발표하지 않았고, 다른 두 개는 합치고 잘라 붙여 한 개 분량으로 만들었습니다. 조합된 어색한 글은 여태껏 방문하신 분들이 문 앞에서 꺼내 읽었던 것이고, 지금은 〈차근차근, 시 쓰기 첫걸음 과제 모음집〉책자에 옮겨두었습니다.
글. 이준용
* 매일매일 작가의 마음에 따라 설치된 그림이 조금씩 바뀐 전시입니다.
1)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2014
2) 차도하, 『미래의 손』, 봄날의책, 2024
3) 김이듬,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타이피스트, 2024
4) 여성민, 『이별의 수비수들』, 문학동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