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관 美學館 MIHAKGWAN Philosopher's Stone

크랙

Crack

2025.8.15.-9.14.


참여작가|주슬아 Hyuna Ji

글|이슬비 Seulbi Lee 

사진|작가제공 

포스터디자인|스튜디오만만세



누락된 인간 out-dated human


하진은 플래시(flesh)라는 새로운 인류가 등장한 세계에서 누락된 인간이다. 이 세계는 인간이 일종의 데이터로 치환되어 중앙정부가 인간을 관리하고, 관리 대상으로서의 인간은 시기에 따라 업데이트 되어야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이곳에는 플래시처럼 매번 시기적절하게 업데이트를 받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인간들도 있다. 이 세계에서는 업데이트를 받지 못한 인간을 일컬어 본(bone)이라 부른다. 하진은 플래시가 되고 싶어 했지만 몸에 크랙이 생기면서 어느새 업데이트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윽고 본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는 누락된 인간이다. 


업데이트에서 누락된 인간. 관리 대상에서 누락된 인간. 세계에서 누락된 인간. 그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모든 조건에서 누락된 인간이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누락된 인간으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가치일까? 우리는 그것을 과연 보편적 의미에서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슬아는 이번 전시에서 동명의 소설 『크랙: 업데이트를 할 수 없습니다.』(2025)를 함께 선보인다. 그리고 소설 속 하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이 진부한 세계에서는 로봇 혹은 기계가 된 인간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대개 그렇듯, SF 이야기 속 주인공은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은 인간, 아니 인간으로 ‘남겨진’ 인간, 인간의 인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는 인간, 다시 말해 ‘누락된 인간’이다. 그럼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누락이란 어쩌면 인간다움의 다른 말이 아닌가? 이어서 또 다른 질문.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대체 무엇인가? 혹은 관점을 바꿔서 다르게 바라본다면,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인간의 인간다움을 유지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끝 모를 질문의 인쇄를 잠시 제쳐두고, 주슬아가 전시장과 소설 속에 펼쳐놓은 실마리들을 쫓아보자. 어쩌면 운 좋게 답변을 마주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함께. 


뼈와 살. 이 세계는 인간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두 개의 구분 사이에 균열(crack)이 존재하지만 크랙은 본이 되어가는 과정 일뿐 그 자체가 완료된 형태를 뜻하지는 않기 때문에 플래시와 본, 두 개의 상태로 구분할 수 있다. 신선함(flesh)은 갓 업데이트를 받은 가장 최신의 소프트웨어를 가진 하드웨어를 지칭하는 것이자 인간으로서의 육신(flesh)이 더 이상 피부조직과 감각, 땀과 침, 피와 살, 근육과 장기로 이루어진 유기체로서의 신체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부품으로서의 한 개체, 특정 업무를 처리하는 정보 값으로서의 한 요소, 다시 말해 데이터로서의 인간을 뜻한다. 주슬아는 둘 사이의 균열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을 주목하지않는다. 그는 업데이트를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상정하고 퍽 염세적인 결말로 우리를 안내한다. 소설 『크랙』은 뼈와 살의 분리되어 인간다움이 말소된 이들에게 인간다움을 다시 되찾아주는 주인공의 승리, 인간성의 해방과 같은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누락된 인간’ 으로서의 하진을 소설 첫머리에 등장시킴으로써 관객과 독자는 자연스럽게 하진에게 감정을 이입하지만 소설의 중앙서버와 같이, 뼈와 살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세계에서 하진은 데이터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오류에 불과하다. 


기억. 본이 되어가는 하진은 조용히 읊조린다. “...과거나 떠올리며 살고 싶지 않아....”(크랙, 7쪽) 과거를 떠올린다는 것은 기억을 유지하거나 갖고 있다는 것, 이는 과거를 회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회상은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인간은 경험을 응축하여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머릿속에 저장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개개인의 동일성을 확보해주는 유일한 탯줄 같은 것이다. 그런데 플래시가 되면 개별자로서의 기억은 소멸되는 듯하다. 개인의 기억이 없는 세상이라니!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청렴한가. 개별적인 기억이 없으니 개인은 모두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착각에서 비롯되는 아주 사소한 말다툼부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창작 행위까지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는 안전하고 관계는 평화로우며 소통은 투명하다. 그 어떤 불화의 씨앗도 발아되지 않는다. 불화는 서로 다른 개인의 기억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이곳은 기억이 없으므로 불화도, 사건도, 삶도 없다. 


동기화.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세계와의 동기화에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와 동기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단지 기계의 낡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인간의 늙음, 정신적 노화도 포함된다. 세계의 변화에 뒤처지는 인간은 점차 동기화에 실패한 모습으로 낡아간다. 이는 개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육체의 노화 못지않게 매일매일 조금씩 소리 없이 다가온다. 이를테면, 인간 사회의 흐름 중에서 정부는 ‘생애주기’에 따라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모두 관리한다. 인간의 성장을 시기별로 나눠서 그에 걸맞은 교육, 경제활동, 결혼, 출산을 장려하며 인간이 적절한 노동을 생산할 수 있게끔 부추기거나 지원한다. 여기서 벗어난 자들을 최소화하여, 사회구성원으로 동참하게 하는 것 정부의 목표일 것이다. 혹은 세계의 변화 속도, 기기의 발전과 정세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동기화에 실패할 수도 있다. 우리는 때때로 업데이트에 실패하여 동기화에 어긋나는 이들을 두고 종종 도태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플래시가 되지 못한 채 업데이트에서 누락된 인간이었던 하진은, 본으로 전락하자마자 이 세계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세계의 균열을 끊어내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연 실패일까? 그는 실패함으로써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불필요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결국 언젠가 낡고 부패할 육신을 넘어, 하나의 실체(entity)로서 영원히 반짝인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당신은 업데이트 하시겠습니까?

 

글. 이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