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관 美學館 MIHAKGWAN Philosopher's Stone
From~ To~
~부터 ~까지
2025.9.17.-9.28.
참여작가|김평진
글|박지예
포스터디자인| 화가의작업실
도움|이혜주, 김이도
생성되는 회화, 만들어지는 성좌
기록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긋남을 전제한다. 기록되는 순간 한 시점에서 떨어져 나온 형태는 가장 가까운 관점으로부터 의미를 부여받으며 기록자의 의도와는 무한히 멀어지게 된다. 과거의 기록을 수신하는 순간, 수신자가 발신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더라도 그 기록은 이미 새로운 것이 된다. 특히 언어로 정박되지 않는 이미지는 기록된 순간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모든 사회적 변화와 인식을 몸소 안으며 그 외연을 확장한다. 이미지는 과거에 있었던 것이 지금과 섬광처럼 만나 하나의 성좌를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것이 ‘지금’이라는 시간에 틈을 내어, 새로운 과거를 현재에 덧입히는 이미지는 선형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제 이미지를 보는 행위는 새로운 시간성을 목격하는 동시에, 하나의 성좌를 만드는 행위가 된다.
김평진은, 스마트폰 속 다량의 이미지, 화면에서 시선을 거둬도 즐비하게 설치된 LED 패널과 이미지로 눈길이 향하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서 고전 회화를 다시 재현해왔다. 뿌연 안개와 어둠 속 은밀한 모습으로 재현된 고전 회화의 도상들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해 어렴풋하게 전승되는 설화처럼 현재에 희미하게 닿아있는 듯하다. 김평진은 과거의 이미지가 원본의 아우라를 상실한 채 잊혀가면서도 미약하게나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현상을 재현하면서, 과거의 것을 지금 이곳에 호출하였다. 잊히지 않고 재현된 과거의 이미지는 (불)완전하게 반복되어 또 다른 성좌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이제 김평진의 그리는 행위는 과거의 것을 (불)충실하게 반복하며 새롭게 상속받는 행위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 김평진은 본인이 상속받은 이미지 위에 아들 이도의 드로잉을 병치시킨다. 〈천지창조부터 이도를 안고 있는 엄마까지〉(2025), 〈선지자 요나부터 이도까지〉(2025)의 작업은 고전 회화를 모노톤으로 재현했던 이전 작업과 확연히 다르다. 과거와 지금의 시간이 공존하는 화면을 나타내기 위해, 유화로 레이어를 올려 배경을 정돈한 뒤 그 위로 거칠고 과감한 선을 단숨에 그었다. 단면적인 선이 역사적인 도상을 덮는다. 이도가 불쑥 나타난 김평진의 작업은 상속받은 이미지와 새로운 이미지, 시간과 재료를 함께 쌓아 재현한 도상과 빠르게 그어진 선이 교차하며 시간성을 가시화한다.
현재의 공간에서 과거의 시간을 펼쳐 재조립하고, 그 위에 다시금 미래로 연결되는 틈을 내어 하나의 화면으로 완결되지 않는 김평진의 그림은 보는 과정에서도 그리는 과정에서도 복합적인 시간성을 갖게 된다. 김평진의 회화는 여전히 생성되고, 우리는 저마다의 성좌를 찾아낼 것이다.
글. 박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