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불가사의
2025.12.19.-2026.1.11.
참여작가|황문정
서문|박지예
비평|윤원화
사진|이지양
그래픽디자인|파이카
도록디자인|지지이(ZZE)
주최|미학관, 황문정
주관|황문정
후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발판 없는 삶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
우리가 마주하는 도시 속 자연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전선을 땅에 묻어 확보한 탁 트인 하늘, 복개천의 콘크리트를 걷어내 복원한 물줄기, 공해·병충·화재에 강해 가로수로 선택되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은행나무 등. 건폐율과 용적률의 원리로 세워진 건물 틈새로 자리 잡은 자연은 그 효용성이 계산되고, 설계되어 우리에게 도달한 행복(福祉)이다. 행복조차 계산으로 추정하고 의도하여 만들어지는 환경은 지향하는 이상향을 가시화하며, 비가시적으로 작동하는 사상적 토대를 물질화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특정 논리 구조에 따라 정제된 결괏값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정제된 도시, 배제된 불필요성. 도시에서 배제되고 변두리로 밀려난 비인간 존재들. 그들은 저마다의 생존 방식으로 살아남아 도시를 배회하고, 허락되지 않은 영토에 비집고 들어와 자리잡는다. 황문정은 어디에나 있지만, 시야에는 없어 잊히는 그 존재들을 목격하고, 수집하여 소환해왔다. 기능을 잃고 외형만 납작하게 남은 도시의 풍경을 제시하며 반복되는 도시개발에서 상실되는 것을 상기하고1)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범람하는 비인간의 존재감을 목격 후 그들을 전면에 세운 비인간의 도시를 상상하며2) 도시-인간-비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작업을 이어왔다. 물질의 표면을 붙잡아 이면에 위치한 비가시적인 것들을 가시화하는 황문정이 이번 전시에서 수집한 표면은 콘크리트다.
도시의 콘크리트는 딛고 있는 대지이자, 일상을 영위하는 생활공간의 구성요소로서 깔려 있는 배경이다. 의심이 필요 없는 단단한 세계. 그러나 근 몇 년간 발생한 붕괴 사고와 땅꺼짐(싱크홀)은 더 이상 콘크리트를 단순한 배경으로 남겨 두지 않는다. 《콘크리트 불가사의》는 의심과 불안의 대상으로 생경하게 다가온 콘크리트를 조명하며, 콘크리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현하고 실험적으로 비틀어 콘크리트의 현 상황을 드러낸다.
작가는 콘크리트의 균열 가능성을 극대화하며 실패하는 콘크리트들을 미학관에 디오라마처럼 펼쳐 놓았다. 도포되어 있는 시멘트는 시간에 맞춰 분사되는 물방울과 닿을 때 얇은 콘크리트 막을 형성하게 된다. 약한 강도로 굳은 콘크리트 막은 관람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서지고, 물에 의해 다시 응결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유사-콘크리트 공법〉은 생략되고 간소화된 공정에서 드러나는 콘크리트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지연 궤도〉는 마천루의 등장으로 콘크리트가 많이 필요하게 되자 제작 시간과 인력을 아끼기 위해 고안된 미리 섞은 콘크리트(ready mixed concrete), 레미콘의 존재 방식을 보여준다. 경화되지 않도록 돌아가는 회전 드럼과 그 안에서 준비된 상태로 머무는 레미콘의 모습은 효율성에 의해 조작되고 지연되는 시간을 드러낸다. 〈종유석 연성 장치〉는 콘크리트 내부 칼슘이 녹아 생성되는 도심형 종유석(Calthemite)을 재현한 작업이다. 자연과 인간, 자본주의가 결합되면서 생성되는 새로운 지질 환경을 보여준다. 〈광물화된 표본들〉은 생명이 다한 콘크리트가 제거하고, 새로운 콘크리트를 올리려고 하는 재개발구역에서 채취한 풍경이자 도시표본이다. 재개발이 한동안 멈췄던 사이 그 틈새로 자리잡은 비인간 존재들은 공사가 재개되자 빠른 속도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 작가는 도시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흙-콘크리트-비인간 존재들-콘크리트의 순환 과정의 단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콘크리트와 흙만 남은 현장과 사라졌지만 데이터로 남은 비인간 존재들.
우리는 전시를 통해 간단한 물리법칙에 기반하고 있는 콘크리트가 자본주의의 시간이 적용되어 기이한 형태로 굳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콘크리트로 체화된 자본주의. 실제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골재, 물을 섞어서 사용하는 건축 자재로, 콘크리트가 적정 강도를 확보하기 위해서 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붓는 타설, 콘크리트가 굳어지는 동안 일정 환경을 유지하는 양생 등 시공 현장에서 지켜야 하는 과정이 많다. 그러나 많은 현장에서 공기단축을 위해 수치화되지 않는 위험 위에 효율성을 덧씌우며 타설과 양생 과정을 축약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주 단순하고도, 중요한 ‘비용절감’의 이유로 콘크리트는 균열 가능성을 떠안게 된다. 이 문제는 단순히 어떤 제작과정에 수반된 효율추구의 고질적인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 위험은 콘크리트 도시에서 살아가고, 그 바닥을 디디고 서 있는 우리에게는 생존의 위협으로 전달되며, “우리 것인 줄 알았던 통제된 세계가 실패”함을 깨닫게 된다. 딛고 서 있는 바닥부터 흔들리는, “발판 없이 사는 삶”이 도래한 것이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곳이 아닌 곳으로 갈 수 없다. 구원은 저곳에 있지 않다. 흔들리더라도, 무너질 위험이 있는 곳이어도 그곳에 서서 이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황문정이 추적하는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도시 속 잊힌 것들, 도시 안에 자꾸 출몰하는 배제된 비인간 존재들—은 이미 다 망가져 사라질 것 같은 세상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몸소 보여준다. 빠르고 매끈한 세계에 발생하는 균열을 놓치지 않고 쫓아 우리는 그 존재들을 마주해야 하고, 발판 없는 삶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상상해야 한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서로 오염된 채로 함께 살아가는 삶.
글. 박지예
1) 황문정 개인전, 《무애착 도시》, 2018, 송은아트큐브, 서울
2) 황문정 개인전, 《유사도시표본》, 2022, TINC, 서울
3) 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 현실문화연구, 2023, p.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