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관 美學館 MIHAKGWAN Philosopher's Stone

베리베리블루베리

Berry very blueberry

2025.4.25.-5.25.


오프닝 퍼포먼스 🍇   

4.25.(금) 18:00


참여작가|지현아 Hyuna Ji

글|이슬비 Seulbi Lee

 

블루베리 페티시(blueberry fetish)

 

  어느 날 한 남자가 정신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옥수수라고 믿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옥수수 낟알 중 하나라고 생각하여 닭을 보면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닭이 옥수수 낟알을 그 뾰족한 부리로 콕콕 쪼아서 집어먹듯이, 자신도 언젠가 닭에게 잡아먹힐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오랜 치료 끝에 마침내 자신이 옥수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옥수수 알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닭이 무서워서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거나 닭 울음소리에 도망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문득, 그가 다시 정신병원에 찾아와서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제 저는 제가 옥수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저 닭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1)

 

  한때 지젝이 즐겨하던 이 오래된 농담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믿음과 이데올로기의 작동 방식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이야기에서 닭은 대타자, 즉 상징계를 의미한다. 지젝은 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 혹은 진실이라는 것이 그저 상징계 안에서 발생하는 상징적 효력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어떤 진실이라는 것은 주체의 정확한 인식이나 개인의 믿음을 넘어서, 타자의 지식에 의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믿음과 상징적 질서는 이렇게 집단적인 가정, 대타자의 인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규범이나 상징계의 질서 안에 파열을 가져오는 역할을 도맡는 것이 있다. 바로 도착증이다.

  도착증은 성적 대상이나 행위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것을 선호하는 이상 성욕을 일컫는데, 이는 단순 플레이 수준의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넘어서 가학적인 정도의 폭력 혹은 수간이나 네크로필리아와 같은 온갖 것들을 다 포함한다. 때문에 성 도착증은 늘 질서 안에서 애매한 위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저 개인의 은밀한 성적 취향에서부터 범죄에 해당하는 영역까지, 도착증의 범위는 신경증에 견줄 만큼 포괄적이다. 지현아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성도착증의 구조와 유사한 것으로 조직한다. 그 중에서도 그의 작업은 대체로 관음증과 같은 절시(竊視)로부터 시작한다. ‘훔친 시각’이라는 의미의 절시가 관음보다 조금 더 포괄적이지만 몰래 무언가를 훔쳐본다는 것에서 서로 같다. 그는 이번 작업을 통해 관음증자와 노출증자의 시선을 교차한다. 작가는 관객을 마치 관음증에 사로잡힌 성도착증자로 만들고, 계속해서 자신의 작업 속으로 음흉하게 관객을 끌어들인다.

  지현아는 흔히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바느질과 패브릭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여성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시도하고 나아가 출산이라는 파열을 드러낸다. 생명의 잉태와 출산이라는 신비와 여성성과 모성에 대한 신화를 전복하는 파열 그 자체에 대한 드러냄은 더럽고, 지저분하고, 피와 오물이 뒤섞인 오염된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면서 동시에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죄의식과 불안, 긴장감이 베일에 감싸인 성스러운 것과 대비되면서 평범한 사물이 어떤 상징적 지위를 얻게 되는 페티시가 작동한다. 마치 여성의 속옷을 떠오르게 하는 분홍색에 하늘하늘한 천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직물을 짜서 만든, 구멍이 촘촘하게 나있는 레이스 원단에 직접 바느질을 하면서 완성한 여러 겹의 베일은 끝내 작가로 인해 더렵혀지고, 파괴되며, 터트려진다. 그렇게 파열의 흔적은 물신화된다.

  도착증은 억압의 기능을 정지시킨다. 억압이라는 상징적 질서의 압력을 다른 사물에 전이하면서 기존 세계의 질서와 구조를 뒤섞기 때문이다. 지현아는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작업을 스스로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수행하면서 비로소 작업을 완성한다. 관음과 노출의 시선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관객이 관음증자라면, 작가는 노출증자의 역할을 맡는다. 그의 퍼포먼스는 파괴하며 파열되기 위해 있다. 한 알, 한 알, 붉은 색 과즙을 머금은 블루베리가 입 안에서 터져 죽는다. 터질 때까지 씹히고, 그대로 삼켜져 위장으로 넘어간다. 파열된 블루베리. 항산화에 도움을 주는 세계의 슈퍼 푸드 블루베리. 그런데, 닭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글. 이슬비


1) 원문은 다음과 같다. … “you know very well that you are not a kernel of grain but a man." "Of course I know," replies the patient, "but does the chicken?" (Slavoj Žižek, Žižek's Jokes, 6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