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관 美學館 MIHAKGWAN Philosopher's Stone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MAY DAY MAY DAY MAY DAY 

2024.7.12.-9.8.

복합문화공간111CM(수원)


참여작가|리슨투더시티, 봄로야, 송성진, 송수민, 정여름, 정혜정, 치명타, 흑표범

기획|이슬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박지예

프로젝트 매니저|김지현

설치|띵크앤메이크

장비|올미디어

그래픽디자인|파이카(이수향, 하지훈)

사진|뭉크스튜디오


주최주관|미학관

후원|문화체육관광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협력|(재)수원문화재단


입장권|10,000원 

*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 수원 시민 5,000원 

* 36개월 미만 무료 

티켓예매|29CM, 티켓링크, 네이버 (현재종료)

기획의 글 : 어긋나고 스러지는, 외침의 빗겨난 자리

 

이슬비(독립기획자, 미학관 디렉터)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도움 요청,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회 안전망 시스템, 본 전시는 카모플라쥬처럼 모습을 감추고 일상화된 재난의 역설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하여 재난에 대한 사유를 관통하여 시스템의 바깥에 위치한 이들에게 주목하고자 한다. 8명(팀)의 시각예술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소외와 차별, 배제와 외면 등 지금 이 상황과 현재의 시간성 안에서 재난이 언제나 곁에 있고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한다.

 

도움의 역설로서의 재난

메아리처럼 울리는 이 단어는 세 번을 반복해야 효과가 있다. 국제조난신호로 알려진 ‘메이데이’는 노동절을 뜻하는 ‘메이데이(May day)’와 구분하기 위해 동일한 음절을 세 번 반복한다. 항공기, 선박, 우주선 등 조종사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사용되는 이 말은 ‘날 도우러 와주세요(m'aidez)’라는 프랑스어가 영어의 ‘may day'로 잘못 들리면서 그대로 정착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명이나 환청처럼 잘못들은 말로 인해 지금 우리가 비상시 위급상황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글로 옮겨지게 되었을 때는 어떠한가? 《MAY DAY MAY DAY MAY DAY》라는 이 전시의 제목은 조난신호의 위급상황을 알리는 역할도, 노동절을 뜻하는 단어의 의미 전달도 불가능해진다. 이는 오직 아무것도 수행하지 못하게 된 음절의 껍데기만을 전달한다. 전부 대문자로 쓰여져 오히려 그 어떤 위급함도, 중요성도 모두 놓치게 된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에 대한 역설,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보고 듣고 겪지만 그만큼 쉽게 지나치는 것들에 대한 역설이다. 재난의 역설은 그것이 이미 우리 주변에 포진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의 재난

각종 바이러스와 기후위기, 전쟁과 테러 등 국가 간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여러 사회적, 인적 재난의 범위가 넓어지는 가운데 여전히 재난은 ‘미래에 다가올 것’, 혹은 ‘우연히 발생한 것’으로 사고된다. 현재성이 배제된 방식으로 재난이 소비되고 사유되는 가운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재난’에 대한 현재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전시는 일상화된 재난에 주목한다. 천재지변이나 불의의 사건이나 사고가 아닌 주변에서 마주하는 재난으로서 차별, 소외, 그리고 외면과 무관심으로서의 폭력을 드러낸다.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2017)에서 일상화된 전 지구적 대재난의 시대에서 나타나는 ‘재난공동체’에 주목한다. 이에 착안하여, 전시는 ‘재난공동체의 발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연발생적 재난공동체는 다른 사회를 향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재난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인간성 자체가 다시 발현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의 역할이 재고되는 것이다. 이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연히’ 발생한 재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인간성은 발현된다. ‘필연적’으로.

 

정치적·사회적 재난

재난은 정치적이다. 개인의 경험에서 발생한 모든 재난과 재앙은 사회적 문제를 담고 있다. 이주민과 난민, 여성과 소외계층, 장애, 차별과 폭력은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 전쟁, 테러와 같은 국가 간 이해관계와 맞물려 사회 안에서 정치적으로 작동한다. 현대 사회에서 재난에 대한 사유는 자본주의 체제와 정치적 편의 속에 흡수되어 현재의 시간성을 감추려는 속성을 지닌다. 매년 여름이 되면 다가오는 태풍의 북상경로를 예측하듯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관측한 재난은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재난의 성격과 다르다. 재난은 갑자기 다가오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재난은 언제나 그랬듯이 항상 여기에 있었고, 정치는 끝없이 그것을 외면하며 재난을 초월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밖으로 쫓는다. 주변을 돌아보기를 멈춘 그것은 눈앞에 놓인 현실에는 눈을 감는다. 이 전시는 현실을 마주하며 차분히 돌아보고 사회 시스템의 외부에 놓인 자들, 정치적으로 누락된 개개인을 호출한다.


차별과 소외, 외면과 무관심에 익숙해진 사회 안에서 난민, 이주민, 장애, 여성, 노숙인 등 사회의 소수자들은 개개인으로 이 사회 안에서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단위를 형성하지 않으면 결코 호명되지 않는다. 8명(팀)의 참여작가는 영상, 회화, 드로잉, 설치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하여 구성되는 동시에 ‘재난의 일상화’라는 공통된 주제를 관통하여 시스템 바깥을 드러낸다는 공통의 목적을 보여준다. 어긋나고 스러지는, 외침의 빗겨난 자리, 도움 요청은 그곳에서 시작하고 재난은 항상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