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 춤을 추자!
Let's Dance Sufi!
2023.10.21.-10.29.
문화비축기지T4(서울)
오프닝퍼포먼스|고스트 그룹(김혜윤, 류진욱)
2023.10.20. 19:30
참여작가|권령은, 듀킴, 요한한&착, 임영주, 흑표범
기획|이슬비
설치|띵크앤메이크
장비|올미디어
그래픽디자인|파이카(이수향, 하지훈)
사진|양승욱, 안부
도움|박지예, 장주연
주최주관|이슬비
후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력|미학관
이제 우리 같이, 수피 춤을 추자!
이슬비(독립기획자, 미학관 디렉터)
이슬람교 일파인 수피즘(sufism)의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수피 춤(sufi dance)은 신-절대자에게 몸을 맡긴 채 춤의 절정에 다다를 때 무아(無我)에 이른다. 이때 인간은 신과의 합일, 접신의 황홀경을 맞는다. 무아는 단지 주체와 대상의 구분이 없는 상태를 넘어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상태, 고정된 틀이나 경계가 없는 상태로서 ‘엑스터시의 기술’을 재현한다. 《수피 춤을 추자! Let’s Dance Sufi!》는 ‘수피 춤’을 키워드로, 종교적 제의에서 비롯된 춤을 동시대 예술의 퍼포먼스로 확장하여 퍼포먼스와 샤머니즘이 가진 미학적 함의를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본 전시에서는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접신, 황홀경, 트랜스에 이르러 신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동물과 사물을 매개하는 의식의 수행자인 ‘샤먼’을 퍼포먼스의 수행자와 연결하여 동시대 예술의 퍼포먼스와 작가를 태곳적 샤먼의 입장으로 재조명한다.
빼어난 샤먼은 제사장인 동시에 연극적이고, 예술적이면서 동시에 관객을 장악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는 현실의 이질성을 자신의 언어로 드러내는 작가의 태도와 유사하다. 이들은 제례의식처럼 액막이를 하기도 하고 인간과 비인간을 연결하기도 하며, 다른 누군가의 설움을 달래거나 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또한 인간 이외의 것들에 주목하거나 다른 사람이 쉽게 지나치는 현상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 자체가 사회로부터 타자화되기도 한다.
이 전시는 2022년 《수피 춤을 추자!》라는 동명의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종교적 제의에서 비롯된 ‘춤’을 동시대 예술의 퍼포먼스로 확장하고, 이를 몸짓-움직임의 문자기록(écriture)으로 전환하고자 기획되었다. 동시대 시각예술의 장르 중 하나인 퍼포먼스는 일종의 이벤트로, 현장성과 동시간성이 특징이다. 움직임과 몸짓으로 이루어진 퍼포먼스는 주로 영상으로 기록되고, 다시 재생되어 전시장으로 들어오거나 기록으로 남겨진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퍼포먼스의 기록 형식을 확장하고자 음악에 악보가 있듯이, 춤을 악보처럼 표기하는 ‘무보(舞譜)’의 형태를 빌려, 종교적 제의에서의 엑스터시의 기술, 퍼포먼스의 기록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사실상 ‘움직임을 기록한다’라는 점에서 스코어(score)와 무보는 같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참여작가들에게 ‘무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한 이유는 무용기록체계로써 스코어가 이미 학계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용이나 안무를 기록하기 위한 스코어와 차이점을 두면서 동시에 무보라는 단어가 주는 생소함이 오히려 우리에게 어떤 일반적인 개념 정립을 유보하기 때문이다. 무보는 조선 후기부터 전해져오는데, 그 중에는 종묘 제례 일무(佾舞)의 동작들을 하나하나 기록한 《시용무보(時用舞譜)》가 있다. 춤추는 모습과 동작, 순서를 세세하게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이 무보는 음악에 따라 어떤 동작을 취해야 하는지, 얼마나 지속해야 하는지 기록되어 있다. 이에 착안하여, 퍼포먼스를 기록하기 위한 무보 제작에 앞서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뒤따랐다.
① 스코어란 무엇인가? 무보는 (또) 무엇인가? ② 춤, 안무, 무용, 움직임, 퍼포먼스는 어떻게 다른가? ③ (퍼포먼스의) 어느 부분까지, (도대체) 어디까지 기록할 수 있을까? ④ (퍼포먼스의) 무엇을 (강조해서) 기록하고 싶은가? ⑤ (보는/읽는 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⑥ 무보를 (보고/읽고 이를) 똑같이 따라하는 사람은 (과연) 같은 춤을 추게 될까? ⑦ 무보를 (보고/읽고 이를)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⑧ 만약 (무보의 완벽한 재현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같은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을까? ⑨ 만약 (무보의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하다면, 무보의 역할은 무엇인가? ⑩ (지나치게) 사적인 언어로 제작된 무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⑪ 엑스터시의 경험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온전히 자신만 알 수 있고 그것도 심지어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신체적 이상 현상에 가까운데 이것을 어떻게 (기록으로) 전달 할 수 있을까? ⑫ (정말) 엑스터시의 경험이 가능(하긴)한가? ⑬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너무나 이성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체계(system)인데, (가장 감성적인, 심지어 이성을 잃은 것과 다름없는) 엑스터시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말이 될까? 등등.
이러한 질문들은 단지 엑스터시라는 특수한 경험이나 퍼포먼스라는 장르적 특수성을 넘어 감성과 이성, 경험과 지각, 몸과 신체, 기록과 전달, 동시성과 부재와 같은 문제를 야기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조금 무책임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렇게 《수피 춤을 추자!》는 2022년에는 무보를 통해 퍼포먼스의 ‘기록 (불)가능성’을 탐구했다면, 2023년에는 샤머니즘과 엑스터시의 기술, 퍼포먼스의 움직임 자체에 초점을 맞춰 전시로 마련되었다.
고스트 그룹은 이번 전시의 오프닝 퍼포먼스로 트랜스 상태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일종의 비정상적인 각성상태이기도 한 트랜스는 무언가에 극도로 집중하거나 몰입했을 때 나타나는 상태로서, 집중된 정신이나 신체의 어느 부분 이외의 다른 곳이 이완되는 것이 특징이다. 고도의 집중과 이완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 상태를 고스트 그룹은 다른 종류의 ‘깨어있음’으로 해석하고 몸으로 표현한다. 권령은은 2021년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아카이브 프로젝트 ‘밤의 플랫폼’에서 선보인 〈서기 0000〉의 퍼포먼스를 리메이크하여 〈오래된 퍼포먼스〉라는 이름의 작업으로 참여한다. ‘삼재막이’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모방을 통해 그와 유사한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행위의 절정은 ‘태우기’, ‘묻기’, ‘버리기’, ‘던지기’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전시장에는 〈‘오래된 퍼포먼스’에 대한 안무노트와 스코어〉(2023)가 함께 전시된다.
그리고 전시장 안쪽 원형 공간에는 듀킴의 〈십자가의 길〉(2022-23)이 전시된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마지막 시간을 일컫는 조각이나 그림으로 총 14처로 이루어져있는데, 듀킴은 이에 착안하여 동명의 작업을 선보인다.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죽는 순간까지, 손 모양을 통해 예수의 마지막 시간을 드러내는 14개의 손 조각들을 보깅(voguing) 댄스의 손동작과 연결한다. 보깅 댄스는 1960년대부터 1980년 후반까지 미국 할렘에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 유색인종 퀴어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듀킴은 예수의 손동작이 지닌 종교적 상징성을 퀴어 정체성을 상징하던 보깅 댄스의 문화적 토양 안에서 다시 해석한다.
임영주의 〈Waiting M〉(2021-22)은 1990년대에 유행했던 한국 드라마 ‘M’에서 초록 눈의 주인공이 바이러스로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했던 예언을 되새긴다. 인류를 스쳐지나간 수많은 종말론적 예언들이 매년 12월 31일 ‘제야의 종’으로 끝나며 또 다시 새해를 맞이하듯이, 〈Waiting M〉은 죽음에 대한 반추이자 세상의 종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목소리, 이미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신작으로 선보이는 〈카밍 시그널〉(2023)은 불안한 상황에서 개들이 보이는 행동 패턴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개들이 보이는 행동을 그들의 '언어'로 판단하고 나름의 소통을 시도하려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입장에서만 가능하다. 이미 인간에게 길들여진 개들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한 상황일수록 땅을 고르거나 한 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임영주는 개들이 보이는 이러한 신호를 인간이 춤을 추는 것과 유사하게 보았다. 신에게 길들여진 인간의 몸짓, 제의적 움직임은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춤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자 수피 춤의 원리이기도 하다. 비디오는 수피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불안함 움직임을 포착하고 기록한다.
요한한과 착은 그동안 함께 작업하며 퍼포먼스를 통해 호흡을 맞추며 몸, 춤, 움직임, 감각, SNS 채팅 플랫폼과 소리의 공명을 활용했다. 요한한은 22년 《수피 춤을 추자!》 워크숍 이후 스코어나 노테이션과 같이 움직임을 기록하는 방식에 흥미를 갖고 접근하다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인류의 흔적을 최초로 기록한 방식들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대문자, 기호, 이모티콘, 라바노테이션처럼 이미지 혹은 도형 형식의 문자들을 이용한 점토판 조각을 선보인다. 〈가이아 노테이션〉(2023) 시리즈는 고대 수메르의 점토판 형태에 착안하여 ‘수피 춤’의 제의적 성격을 강조하고자 조물주와 피조물, 제의성, 영적 상태로의 진입과 같은 내용을 묵시록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착 역시 8개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점 찍기’ 행위를 영상과 퍼포먼스로 확장하여 보여준다. 〈궤도〉(2023)는 자신을 관찰하고 내면을 탐구하는 수행적인 작업으로, 동일한 제목의 영상 작업과 함께 ‘궤도’를 연결되어 보여준다. 작가는 작업을 감지와 감상의 대상이 아닌 나 자신과 동일화되어 신체적 경험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제안하고자 한다.
흑표범은 〈여름이 끝나다〉(2023)라는 사운드 작업과 함께 제주 강정천의 멧부리에서 촬영한 〈서울에서 오신 예술가분들〉(2022)을 선보인다. 이 영상은 제주 강정천의 자연을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와 촬영팀, 그리고 강정에 위치한 해군기지의 미묘한 대립이 블랙코미디처럼 그려진다. 강정천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은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적 공간으로 신성시되면서도 제사 때에는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가부장적 공간이다. 영상에는 시종일관 ‘찍지 마세요, 여기 찍으시면 안돼요’라는 강압적인 안내가 들려오고, 작가와 촬영팀은 해군기지가 아니라 바다를 찍는 거라고 설명한다. 같은 시공간 안에 장소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항상 그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자연과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드러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샤먼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과 닮아있다. 또 흑표범은 22년 《수피 춤을 추자!》 프로젝트에서 비둘기 떼를 기억하며 무보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후위기 속 비인간존재들과 같은 생태를 일종의 소수자 주체로 바라보고 이들의 취약성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이어가게 되었다. 작가는 〈Birds〉(2023) 시리즈를 통해 그런 고민의 시간 속에서 기후위기와 화재, 벌목 등 인간이 야기한 재난 속에서 집을 잃고 점차 사라져가는 새들을 그린다.
전시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T4에서 약 열흘 간 진행되었다. 매봉산 자락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는 잘 알려져 있듯이 석유를 비축했던 1급 보안시설로, 1970년대에 지어졌다. 당시 정부에서 비밀리에 관리하던 이곳은 산업화 시대의 상징으로 한동안 유휴 상태로 방치되다가 2017년에 문화예술공간으로 개관하였다. 약 40년간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이곳은 수풀이 우거진 초록에 둘러싸여 있고, 내부는 어둡고 왠지 모르게 눅눅하다. 둥근 형태에 높은 층고를 가졌으며, 작은 소리도 사방에서 울린다. 수피 춤의 형상처럼, 둥글게 공간을 배회하자. 그리고 이 모든 (불)가능성을 끌어안고, 이제 우리 같이 수피 춤을 추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