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만박물관
Seoul Museum of Taiwan
2023.03.11. - 2023.03.26.
Artist. Salty Xi Jie Ng
전시디자인 및 설치. 오민수
미디어. 올미디어
그래픽 디자인. 박유빈
한영 번역. 이지언, 이경탁
한중 번역. 허경함
주최. 미학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구어체로 지어진 박물관
우리는 진기할리 없는 소품들로 구성된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다.
낯선 중국어가 쓰인 음료수 캔과 키링,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과 친환경 빨대 등이 놓인 이 전시장은 무얼 의미하는가? 이 전시장은 스펙터클에 저항하는 일상의 최전선이라도 되는 것일까? 이 전시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미 수 차례 시도된 ‘낯설게 하기’에 재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풍경을 사소하다 말한다면, 이때의 사소함은 거창함의 반대말이 아니라 면밀함의 반대말이다. 왜냐하면 이 전시장은 ‘중국(중화권)’에 대한 우리들의 성긴 인식과 이 인식의 해변에 쓸려 온 ‘대만’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작가 설티 응시지에는 약 2주간 연희동에 머물면서, 대만인들이 운영하는 식당과 학교에 방문하고, 서울에 사는 대만인들과 인터뷰를 했다. 작가는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대만인이라는 정체성과 그것이 한국사회 안에서 어떤 의미인지 등을 물었다. 그리고 이와 연관된 물건을 기증받았다. 빨갛고 파란 진열대 위를 채우는 것은 바로 이 기증품들이다. 우리는 작가가 수집한 사물과 이야기를 통해 재한대만인들 한 사람씩을 만나볼 수 있다. 한 대학에서 국악과를 다니고 있는 유학생, 리포터 생활을 하다가 서울의 대만인 학교에 근무하게 된 미술교사, 중국인 남편과 함께 살다가 딸에게 대만식 가정식 레시피를 전해주고 식당을 열도록 도운 어머니 등, 이야기는 늘 평이하기도 하고 굴곡지기도 하다. 이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야기의 목적이 뜨거운 감동이나 엄혹한 고난을 찾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온도는 마치 해류처럼 복수의 경계들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참여작가 설티 응시지에부터 그러하다. 설티는 싱가포르 중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으며, 이 때문에 작가의 시선은 자신의 고향인 싱가포르와 자기 조상들의 고향인 남중국지역에 닿아 있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문화적인 배경 덕분에 두 가지 언어를 더 구사할 줄 아는데, 하나는 우리가 소위 중국어라고 알고 있는 북중국의 방언인 만다린(Mandarin Chinese)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남부 푸젠성의 방언이자 대만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복건어(福建語)이다. 자기 가족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유전적 유사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하였고, 그 과정에서 작가는 대만이 혈연적으로 연결된 장소일 수 있음을 발견한다. 우연찮게 이번 전시가 열리는 연희동과 인근 지역은 한국에서 대만인이 적지 않게 사는 곳이다. 작가는 점차 확장시켜오던 화교 커뮤니티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이곳에 정박시킨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이야기의 온도는 해류처럼 난류로 한류로 바뀌며 순환한다. 작가의 시선이 싱가포르 해협에서 남중국해로, 타이완 해협으로, 산둥성 앞바다로, 인천 앞바다로 그리고 연희동으로 이동하듯, 인터뷰를 하기 전부터 질문과 답변은 우리 안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다음과 같이 돌고 돌았다. 싱가포르에서 온 작가는 왜 서울에서 대만인을 만나려고 하는가? 인터뷰 대상자가 대만인이라면, 기준은 국적인가 출신인가? 중국 대륙에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한국정부로부터 대만(중화민국) 국적을 부여받은 산둥성 출신의 재한 화교는 포함되는가? 화교는 누구인가? 조선족은 한국인인가?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중국인인가?
이 작은 박물관에서 놓인 사물과 이야기는 자꾸 대만에 대해 말한다. 오락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이후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나라, 태국과 헷갈리는 나라, 만다린을 쓴다는 이유로 중국인이라고 패싱되어버리는 사람들의 나라, 여행사 사이트에서 찾아볼 때 때때로 동남아시아 카테고리에 있는 나라. 한국 안에서 대만에 대한 오해의 숫자는 진열된 소품들의 수보다 많다. 그리고 이 전시장에서 대만인들의 이야기가 하나둘씩 우리에게 떠내려올 때마다, 우리는 대만뿐만이 아니라 중국(또는 중화권)에 대한 우리 인식의 해변 전체를 면밀하게 바라볼 기회를 가진다. 그 해변에는 고유명사로서의 중국과 보통명사로서의 중국(중화권)이 서로 얽혀 있다. 그러므로 이 사소해보이는 진열대는 작가 설티가 우리의 해변에서 비치코밍하듯 모은 사물들로 구성된 일시적인 박물관이다.
글. 이문석
작가 소개
설티 응시지에는 싱가포르 출신의 작가로,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의 방식으로 관계망의 효과를 증폭시키거나 전복시킨다. 작가는 한 사회의 다양한 커뮤니티 안으로 들어가 구성원들과 교류하고, 연극적인 상황을 통해 허구의 패러다임을 작동시킨다. 나이든 여성이 느끼는 친밀감의 의미를 묘사하고, 화교사회의 제사문화를 통해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의 문화정체성을 수집하며, 갤러리나 미술관 주요인사로 분하여 미술계시스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등 설티는 사회참여적 예술을 전개하며 한 사회를 지탱하는 비물질적 가치들을 비추어 왔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그동안 자신의 문화정체성으로 여겨지는 '중화권' 또는 '동아시아 문화권'이 한국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며, 그 중에서도 만다린이 이 관계망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두었다. 설티는 포틀랜드 주립대학에서 예술과 사회실천 분야 석사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출판 프로젝트로 『Not Grey: Intimacy, Ageing & Being』(2016)을, 'Arts-Business x Business-Arts Residency'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Residency with Ban Kah Hiang〉(2022)를 통해 워크숍과 포스터 제작을, 리서치 프로젝트 겸 퍼포먼스 렉처로 〈Dear Singapore Art Museum Acquisition Committee〉(2022) 등을 진행하였다.
인터뷰 참여 및 기증품 제공 : 노가군, 린이, 방시윤, 방지수, 쉬윤페, 이민기, 장은자, 진숙평, 진지예, 티파니, 허경함, 황군
사진 : 양승욱
Photo : Seungwook 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