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은 물의 표상뿐만 아니라 그것의 성질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물을 가장 빠르게 잘 흡수하는 한지와 더불어 수성(水性)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과 종이의 한시적 접촉에 의해 발생하는 일시성을 화폭 안에 담는다. 대부분의 수성 재료가 그렇듯이 물의 농도에 따라 종이에 스며드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기름이 아닌 물을 재료로 삼는다면 이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박소현은 물의 물성을 물로 표현한다는 것이 그가 보여주고 있는 작업의 특징 중에 하나이다. 그렇게 흩어지고 뿌려지는 가운데 물은 종이 위에 맺혀서 그 순간의 형상을 스스로 기록한다. 중첩되는 물의 이미지는 포말의 반짝임과 함께 잔상처럼 화면에 남는다. 그는 기존에 〈부유하는 물덩이〉(2018-) 시리즈를 비롯하여 여전히 흩어졌다 사라지는 물의 이미지에 집중한다. 그중에서도 작가가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은 ‘분수’인데, 공원이나 광장 한가운데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것은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높게 솟구치지만 이내 다시 사라졌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분명 그곳에 있었지만 그새 자취를 감추는 분수의 물줄기는 한시적 존재의 상승과 하강을 나타내지만 물줄기의 잔상은 기억 속에 각인되어 남는다. 희미한 잔상이 사라진 존재를 대체하여 오래도록 남는 것이 잔잔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이미지의 속성이다. 너무 뜨거워서 식어버리지 않도록, 또 너무 차가워서 더 뜨거워지지 않도록 서로 미온한 온기를 유지하는 것. 가장 적극적인 수동의 형태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계속 이 정도의 온도와 힘으로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것. 작가가 오로지 그때의 감각과 기억에 의존하여 누군가를 그리는 마음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간직하고자 표현한 물줄기의 상승과 하강의 움직임은 잔잔하면서 또 강인하다. 충분히 어둡지 않은 밤이 안내하는 것은 충분히 기억되지 못한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밤, 하얀 밤-따라서 카오스, 어둠이 부족한 그 밤, 그렇다고 빛이 밝혀주지도 않는 그 밤.”1)
글. 이슬비
1) 모리스 블랑쇼, 『카오스의 글쓰기』, 박준상 옮김, 서울: 그린비, 2012, 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