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AGE OVER TIME

2024.07.05. - 2024.07.28.


Artist. SungJu Ham

기획 자문과 서문: 이지언

디자인: 이건정

리뷰: 박지예

‘오늘’을 분실하는 ‘어제’가, ‘지금’을 상실한 ‘금방’이, ‘여전히’ 뒤로 스며드는 ‘아직도’가 그 사람의 등 뒤에 새겨진다.1)  함성주가 ‹vintage_sifiart Roy_›(2024)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본다. 용량에 맞게 삭제한, 간신히 그의 아이폰 사진첩에서 살아남은 이미지가 견고히 팔레트 맡을 지킨다. «Damage over Time»은 100개의 2호 캔버스와 하나의 100호 캔버스로 구성된다. 지난 몇 달간 그는 ‹vintage_sifiart Roy_›들을 계속해서 살피고, 완성된 ‘오늘’의 캔버스를 망각한 채 ‘어제’로 돌아가 ‘아직도’ 그린다. 


함성주는 캔버스 천을 벽에 걸고 붓질을 한다. 적당한 어둠이 쌓이면 직접 만든 툴로 조금씩 닦아내며 대비를 만들어내는데, 이때 미세하게 힘을 조작하기보다 자연스러운 붓끝의 압력으로 벽에 새겨진 요철을 찍어냄으로써 ‘매끄러움seamless’ 미학에 대해 반항한다. 붓을 쥔 손의 압력은 간혹 몸집을 키우며 크고 검은 구멍으로 우리를 데려가지만, 물질의 그림자를 토해내며 다시 입 밖으로 꺼낸다. 무수히 많고 다른 스트로크와 이름 모를 자국들은 강박적으로 같은 이미지에 천착한다. 반복되는 화면은 마치 아이폰 액정처럼 깜빡이고, 작가는 익숙한 터치 감각을 빌려 엄지와 검지로 확대하거나 밝기를 조절하고 무드를 설정하는 방식을 원시적으로 캔버스에 옮긴다.


‹vintage_sifiart Roy_›는 통창의 전시장을 장악한다. 별안간 맞닥뜨린, 한정된 맵을 누비는 게임의 배경처럼. 전시명 ‘Damage over Time’은 게임에서 특정 시간에 걸쳐서 연속적으로 유발되는 피해를 의미하며, ‘장판 깔기’라는 은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작가에게 장판은 캔버스라는 다중/물질적 차원으로 해석되고, 그 안에서 생성되는 경향성을 레이어를 쌓거나 색을 휘발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척결하거나 누락시킨다. ‹vintage_sifiart Roy_›라는 다소 난데없는 제목은 이미지 검색으로 추적한, 그것의 역할이나 나름의 정의로 이루어진 캡션으로, 누군가 이미 플레이한 과거를 복기시키며 등장한다. 앨범에 저장되는 순간 휘발되는 이미지의 워터마크로 기능하며, 픽셀이 깨지고 레이어가 쌓이며 불명확해진 출처의 단서로 남는다.


이번 판에서 작가는 거센 공격을 퍼붓는 대신 덫을 설치하여 이탈하는 것들의 아픔을 유예시키고, 참전한 ‘객체’로 배회하며 요정과 늑대처럼 세계 속에 풀려난, 무시할 수 없는 자율적인 힘2)을 발휘한다. 힘을 빼지 않는 태도는 일종의 공격이다. 공격의 시도가 방어의 시작이기도 하듯이, 함성주는 전시Wartime라는 공격과 방어의 굴레로 우리를 초대하여 전용할 수 없는 무기와 전술들을 몰아넣고 이를 골고루 펼쳐놓는다. 예기치 못한 전시를 맞닥뜨린 참전자는 관망하거나, 숨을 것이며 혹은 무기를 쥐고 전투태세로 몸을 갖출 것이다. 작가는 몸을 비틀어 피하지 않고 흉과 흔이 될 공격과 방어를 맞이한다.


살아남았나요? — 네. ‘아직도’요.


글. 이지언


1) 조재룡, 「트랑스의 사건」, 유진목 『연애의 책』평론, p. 85

2) 그레이엄 하먼, 『네트워크의 군주』, 갈무리, 2019, p. 16


전시리뷰


하나의 유령이 미학관을 배회하고 있다. -반복이라는 유령이.


전시장에 걸린 〈vintage_sifiart Roy_〉는 총 101점이다. 이 말인즉슨 함성주는 최소 101번,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포착한 갑옷 같기도 가죽 자켓 같기도 한 의상이, 혹은 그 의상을 입은 인물이 의미 있어서 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함성주는 이전 전시들을 통해 회화의 소재가 게임 장면, 영화 스틸 이미지, 찍어왔던 핸드폰속 사진 등 스크린 이미지임을 밝히며, 스크린 속 화면을 옮기는 전이 과정 즉 ‘이미지의 번역’이 일어나는 중간값을 캔버스 위에 담아왔다. 그럼에도 이전과 달라지는 지점이 있는데, 이번 《Damage over Time》에서의 작업은 이미지 번역 과정에 반복이 추가되면서 스크린과의 중간값에서 벗어나 그만 회화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다시, 전시장을 빼곡히 채운 캔버스의 이미지에 집중해보자. 번역이면서, 반복이면서, 재현인 함성주의 작업들은 원본 이미지의 사후의 삶이다. 원본 이미지는 이미 상실됐지만, 반복적으로 그려지면서 원본으로서 끊임없이 돌아온다. 캔버스의 화면들은 원본 이미지를 유령처럼 불러온다. 그러나 동일한 반복이 없듯이, 이미 원본과 달라진 각각의 화면들은 이내 원본 이미지를, 또 비슷하게 그려진 듯 보이는 주변 캔버스와 차이를 보이며 스스로를 드러낸다. 〈vintage_sifiart Roy_〉가 비단 원본 이미지만을 탈각한 건 아닌 듯 보인다. 함성주는 캔버스를 채워나갈 때 “그 안에서 생성되는 경향성을 레이어를 쌓거나 색을 휘발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척결하거나 누락”1)시키며 의도적으로 작가의 스타일을 지워버렸다.

사라진 내러티브, 모노톤의 색채, 어딘지 모르게 플랫한 화면.


이전부터 작가의 작업을 따라가며 관람해 온 입장에서 함성주의 이러한 시도가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다. 《우리는 사랑할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통의동 보안여관, 서울, 2021)에서는 스크린 속 화면을 자신만의 시각 언어로 재구성하는 번역 과정을, 《찢어진 그림》(위상공간, 서울, 2022)에서는 번역 과정 이후 화면에 남은 회화적 특성의 강조를, 《Rigger》(갤러리 THEO,서울, 2023)에는 색채 사용을 최소화한 무채색의 이미지를 선보여왔다. 《DAMAGE OVER TIME》는 이전 작업들에 “반복”이라는 행위가 덧붙여져, 보다 평면적인 화면, 보다 회화적인 회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의 회화적 실험처럼 보이는 이번 전시는 많은 것이 소거된 채 앞으로의 작가 작업을 예지하게 한다.


하나의 이미지가 100호의 캔버스와 2호의 캔버스들을 배회한다. 모든 의미를 유실한 채. 혹은 모든 의미를 떠안은 채.


글. 박지예


1) 함성주 개인전 《DAMAGE OVER TIME 》 서문 (글: 이지언)